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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아빠의 보호자가 되다

열두 살, 아빠의 보호자가 되다

[마음 온(溫)에어] 치매 아버지를 지키는 12살 소년의 기록

[마음 온(溫)에어] 치매 아버지를 지키는 12살 소년의 기록

2024.11.07

2024.11.07


 

Editor 햇살한줌
[마음 온(溫)에어]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로 마주하는 우리 주변의 진실, 따뜻한 마음이 모여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어른이 되는 게 두렵기도 해요."


영화 <벌새>에서 볼 수 있는 주인공 은희의 성장통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미성년’ 준우(가명, 12세)의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은희가 1994년의 불안정한 시대 속에서 홀로 내면의 성장을 겪어야 했다면, 준우는 치매 아버지를 돌보며 너무 이른 나이에 현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출처: 영화 '벌새' - (주)엣나인필름)

멈춰버린 시간, 쌓여가는 책임


"아빠가 만든 떡이 우리 동네에서 제일 맛있었어요."



준우의 기억 속 아버지는 늘 활기찼습니다. 시골 마을 장날이면 새벽부터 반죽을 치대고, 명절이면 온종일 떡을 빚었습니다. 3년 전 그날도 평범한 아침이었습니다. 떡 배달을 나간 아버지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은 건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였습니다.


 

뇌경색 진단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어 찾아온 치매 증상은 가족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병원비생활고가 겹치면서 떡집 문은 닫혔고, 어머니는 깊어 가는 남편의 증상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열두 살 준우의 어깨에 한 가정의 생계가 놓였습니다.

새벽 다섯 시, 멈추지 않는 하루


매일 새벽, 준우는 이웃집 수도꼭지 앞에 섭니다. 한 달 전 밀린 공과금으로 단수된 집에서 아버지의 아침 약을 챙기려면 반드시 필요한 발걸음입니다. 플라스틱 통 세 개에 받은 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준우의 책가방에는 늘 아버지의 약봉투가 함께 담겨있습니다.


 

※ 준우의 모습 

"아침에 약 드시는 걸 봐야 안심이 돼요. 그래서 학교 지각하면 안 되거든요."


아침 6시, 준우는 아버지를 깨워 약을 챙겨드립니다. 세수를 도와드리고, 옷을 갈아입히고, 아침을 차립니다. 7시가 되면 등교 준비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약 종류도 많고, 시간도 다 달라서요."


준우의 책상 위에는 달력이 붙어있습니다.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 펜으로 꼼꼼하게 약 복용 시간병원 예약일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색깔만 봐도 어떤 약인지 알 수 있어요."

학교에서도 이어지는 걱정


"수업 시간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요. 아빠가 가스레인지를 켜고 깜빡하시면 어쩌나, 화장실에서 넘어지시면 어쩌나... 자꾸 그런 생각이 나요."


준우의 성적은 1년 사이 눈에 띄게 떨어졌습니다. 숙제를 못해 와 선생님께 꾸중을 듣는 일이 잦아졌고, 체험학습비를 내지 못해 현장학습을 포기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 수업을 듣는 준우 

"진로 계획을 적어 오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냥 아빠랑 계속 함께 있고 싶다고 썼어요."


담임 교사는 준우의 글을 읽고 아동보호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현장 조사 과정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의심 신고로 준우는 한동안 큰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잠들 수 없는 밤


밤이 되면 준우의 긴장은 더욱 높아집니다.


"아빠가 한밤중에 집을 나가려고 할 때가 있어요. 잠들기 전에 현관문 잠금장치를 세 번씩 확인해요."


한 달 전의 일은 준우의 가장 큰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새벽에 잠시 잠이 든 사이 아버지가 집을 나가셨고, 경찰의 도움으로 세 시간 만에 겨우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준우는 아버지의 지갑과 옷에 모두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두었습니다.


 

"이제는 아빠 숨소리만 들어도 깰 수 있어요.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가 나면 바로 일어나요."


열두 살 아이가 터득한 슬픈 생존법입니다.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그림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 치매 환자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의 주 보호자 평균 연령은 57세입니다. 하지만 준우처럼 10대 보호자들은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약 3천 명으로 추산되는 미성년 보호자들의 현실은 암담합니다. 83%가 학업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95%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특히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비율이 76%에 달합니다.

작은 희망의 시작


다행히 준우의 이야기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이랜드복지재단의 'SOS 위고' 프로그램을 통해 정기적인 복지 서비스를 받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주 2회 데이케어센터를 다니며 안정적인 치료를 받게 되었고, 준우는 그룹홈에서 주중 생활을 하며 또래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말이면 아버지를 만나러 갑니다.


최근 준우는 그룹홈 복지사와의 상담에서 조심스레 꿈을 꺼냈습니다.


"나중에 아빠같은 분들을 돕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치매도 고칠 수 있는 의사요."


 

※ 준우(좌측에서 3번째)와 친구들 

 

영화 <벌새>가 한 소녀의 고립된 성장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었듯, 준우와 같은 어린 보호자들의 이야기도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전국 3천 명의 미성년 보호자

당신의 작은 관심이

이들에게는 큰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준우가 안정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후원금액은 준우의 생계 및 학습비로 전액 사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