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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단일 시즌 300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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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파크] 세인트루이스의 실수로 탄생한 MLB 최초 4회 사이영상
[MLB 파크] 세인트루이스의 실수로 탄생한 MLB 최초 4회 사이영상
2024.11.03
2024.11.03
Editor 송치훈 기자(동아닷컴)
[MLB 파크]
스포츠 전문 기자 경력 10년, 야구 찐팬 경력 30년, 야구에 진심인 그만의 시선으로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메이저리그의 숨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해당 콘텐츠는 Eland Museum의 특별한 소장품으로 MLB Park와 함께 제작하는 기획 콘텐츠 입니다.
1983년 5월 20일 '베테랑 스타디움(Veterans Stadium)'에서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경기가 열렸다.
이날 홈팀 필라델피아의 선발 투수 스티브 칼튼은 팀이 0-1로 뒤진 4회초 2사 만루 상황에서 샌디에이고의 8번타자 겸 포수 더그 그워스즈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이 삼진은 그의 메이저리그 통산 3,510번째 탈삼진*이었다. 이 탈삼진으로 칼튼은 무려 56년 동안 깨지지 않던 월터 존슨**의 통산 최다 탈삼진 3,509개를 넘어선 두 번째 선수가 됐다.
* 탈삼진(Strikeout): 타자가 3개의 스트라이크를 얻어 아웃되는 것. 투수의 구위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 월터 존슨(Walter Johnson): 1907년부터 1927년까지 워싱턴 세네터스에서만 활약한 전설적인 투수. '빅 트레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통산 417승은 메이저리그 근대 역사상 2위 기록이다.
칼튼을 대표하는 구종은 슬라이더*다. 칼튼 이후 좌완 투수들에게 슬라이더는 필수로 갖춰야 할 구종으로 떠올랐다. 1973년 내셔널리그 홈런왕이며 1988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타자 윌리 스타젤은 칼튼의 슬라이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슬라이더(Slider): 직구와 비슷한 릴리스 포인트에서 투구되지만 좌우로 꺾이는 변화구. 칼튼의 슬라이더는 좌완 투수의 슬라이더 그립과 투구폼의 교과서로 여겨진다.
"Hitting Carlton is like trying to drink coffee with a fork."
(칼튼의 공을 치는 것은 포크로 커피를 떠먹는 것과 같다.)
1944년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칼튼은 1963년 트라이아웃을 통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했다. 입단 4년 만에 리그를 호령하던 투수 밥 깁슨이 이끄는 세인트루이스의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는 연봉 협상 과정에서 그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고, 1971시즌이 끝난 뒤 그를 필라델피아 필리스 투수 릭 와이즈와 트레이드했다.
이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 중 하나로 남았다. 칼튼은 필라델피아 유니폼을 입은 첫 시즌이던 1972시즌 41경기에서 346 1/3이닝을 던져 27승 10패, 평균자책점* 1.97, 310탈삼진을 기록하며 사이영상**을 거머쥐었다. 이 시즌 그는 역대 1위인 11.1의 투수 단일 시즌 fWAR***을 기록했다.
* 평균자책점(ERA, Earned Run Average): 투수가 9이닝당 허용하는 평균 자책점. 투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기준이다.
** 사이영상(Cy Young Award): 1956년부터 시상된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상. 양대 리그 각각 1명씩 선정한다.
*** fWAR(Fangraphs Wins Above Replacement): 팬그래프스가 산출하는 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11.1이라는 수치는 평균적인 대체 선수와 비교했을 때 한 시즌 동안 11.1승을 더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시즌 칼튼이 더욱 대단한 것은 필라델피아가 한 시즌에 고작 59승*을 거둔 최약체 팀이었다는 점이다. 단 한 명의 투수가 팀 전체 승리의 45.8%를 책임진 것은 사이 영이 1901년에 기록한 41.8%를 넘어선 1900년 이후 최고 기록이다. 그해 칼튼을 제외한 나머지 필라델피아 투수들의 성적은 32승 87패(승률 0.269) 평균자책점 4.21이었다.
* 메이저리그에서는 한 시즌, 162경기를 치르며, 평균 81승을 기록한다.
세인트루이스 시절부터 팔꿈치가 좋지 않았던 칼튼은 설상가상으로 주무기인 슬라이더 제구가 다시 흐트러지면서 이후 3년 간 44승 47패로 고전했다. 하지만 투수판 스탠스 조정을 통해 제구력을 끌어올리면서 1977시즌 23승 10패 평균자책점 2.64로 부활, 다시 사이영상을 차지했다.
1980시즌에는 24승 9패 평균자책점 2.34의 성적으로 통산 세 번째 사이영상을 거머쥐었다. 특히 1980시즌 칼튼은 38경기에서 304이닝을 소화했는데 이후 투수들의 분업화와 5인 로테이션 체제*가 정착됐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 300이닝 기록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1980시즌 필라델피아는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꺾고 창단 9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는데, 칼튼은 최종전이 된 6차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것을 포함해 포스트시즌 4경기에서 3승 평균자책점 2.31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 5인 로테이션 체제: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선발투수 운영 방식. 5명의 선발투수가 순차적으로 등판하며 각자 4일 휴식을 취하는 시스템이다. 이전의 4인 로테이션에 비해 투수당 등판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부상 위험을 줄이고 투수의 장기적인 커리어를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982시즌에도 23승 11패 평균자책점 3.10을 기록하며 또 다시 사이영상을 수상한 칼튼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사이영상 4회 수상자가 됐다. 1983시즌에는 친정 팀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통산 300승을 달성했으며, 개인 통산 5번째 탈삼진왕에 올랐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1985시즌, 만 40세의 칼튼은 16경기 1승 8패 평균자책점 3.33의 저조한 성적만 남긴 채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1986시즌에도 부진한 성적이 계속되자 필라델피아는 칼튼에게 은퇴를 권했다. 하지만 당시 통산 4000탈삼진에 단 18개만을 남겨둔 칼튼은 이를 거부했고, 필라델피아는 칼튼을 방출했다.
이후 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카고 화이트삭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미네소타 트윈스를 거치며 통산 4000탈삼진을 달성했다. 하지만 1988시즌 미네소타가 4경기 만에 자신을 방출하자 결국 은퇴를 결심했다.
총 24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그의 통산 성적은 329승 244패, 평균자책점 3.22, 5217 1/3이닝, 4136탈삼진 등이다. 올스타 10회, 사이영상 4회 수상에 메이저리그 역대 좌완 투수 최다승 2위 및 최다 탈삼진 2위의 기록을 남겼다.
역대 좌완투수 중 300승과 3000탈삼진을 모두 달성한 선수는 칼튼과 랜디 존슨 단 둘 뿐이다. 우완투수까지 범위를 넓혀도 단 10명*뿐. 이 중 300승과 4000탈삼진을 모두 달성한 선수는 스티브 칼튼, 랜디 존슨, 놀란 라이언, 로저 클레멘스 총 4명뿐이다.
* 300승, 3000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한 사람은 월터 존슨, 톰 시버, 게일로드 페리, 돈 서튼, 그렉 매덕스, 필 니크로, 스티브 칼튼, 랜디 존슨, 놀란 라이언, 로저 클레멘스이다.
1989년 필라델피아는 칼튼의 등번호 32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1994년에는 95.6%의 높은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필라델피아는 2004년 새로 개장한 시티즌스뱅크파크에 칼튼의 동상을 세웠다.
칼튼의 친필사인과 “To Doug, Best Wishes(행복을 빌며, 더그에게)”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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