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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경지에 올랐던 제구력, 그랙 매덕스

예술의 경지에 올랐던 제구력, 그랙 매덕스

2024.03.08

2024.03.08


 

Special Editor : 동아닷컴, 송치훈 기자님


스포츠 전문 기자 경력 10년, 야구 찐팬 경력 30년, 야구에 진심인 그만의 시선으로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메이저리그의 숨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해당 콘텐츠는 
Eland Museum의 특별한 소장품으로 MLB Park와 함께 제작하는 기획 콘텐츠 입니다.

2003년 9월 21일.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홈구장 터너 필드에서는 역대 최초로 불리우는 대기록이 작성됐다.

주인공은 바로 그렉 매덕스. 이 유명한 스카우팅 리포트는 단 한 문장으로 그가 어떤 투수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I really believe that this boy would possibly be the number 1 player taken in the country...(중략) He throw 86-89 consistantly with very good movement"
(나는 이 소년이 미국 넘버 1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는 다소 빠르지 않은 구속(138-143 km/h)을 매우 좋은 움직임을 가지고 던진다.)



※ 고등학생 시절 그랙 매덕스의 스카우팅 리포트

매덕스는 예술의 경지로까지 평가 받는 제구력을 앞세워 극한의 효율적인 투구를 펼치는 투수였다. 매덕스의 목표는 삼진을 잡는 것이 아니라 범타*를 유도해 적은 투구 수로 효율적인 피칭을 하는 것이었다.

*범타 : 타자가 친 타구가 안타가 되지 못하고 수비수에게 잡혀 아웃이 되는 것

볼넷을 주는 것을 가장 싫어해 스트라이크존을 피해가는 승부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탈삼진을 위한 최소 3번의 투구조차 낭비로 여겨 전체 투구의 대부분을 가까이를 범타 유도용 구종인 변형 패스트볼*과 오프스피드 피치**로 승부했다.

*변형 패스트볼 : 기존 패스트볼(직구)를 변형된 그립으로 던지는 구종. 일반적인 직구와 유사하나 공의 궤도에 약간의 변화가 생겨 타자들이 쉽게 대처하지 못하는 구종이다. 흔히 '컷패스트볼' , '스플릿패스트볼'을 일컫는다.
**오프스피드 피치 : 타자의 타이밍을 뺐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반적인 구속보다 현저히 낮은 속도로 투구하는 것.


※ 그렉 매덕스가 직접 소개하는 자신의 피칭 그립 (출처: MLB Hall of Fame)

그는 통산 5,008이닝을 소화하면서도 효율적인 투구 덕분에 커리어 내내 큰 부상 없이 적은 투구 수로 이닝을 삭제했다. 대표적인 예로 1997년에는 9이닝 동안 5피안타 1실점하면서 단 78개의 공만으로 완투승을 챙기기도 했다.


※ 그렉 매덕스 78구 완투 경기 (출처: MLB)

통산 3,371탈삼진을 기록하는 동안 볼넷은 999개 밖에 주지 않았고, 이마저도 177개는 고의사구였다. 보통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고의사구 비율이 7% 정도임을 감안하면 매덕스는 내준 볼넷의 17% 가까이가 고의사구로 이를 제외하면 9이닝 당 볼넷허용은 겨우 1.48개다.

 

거기에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다인 투수 부문 골드글러브 18회 수상 기록이 입증하듯이 투구 이후 수비수로서도 최고 수준이었다. 매덕스는 데뷔 후 3년차인 1988년에 18승을 거둔 뒤부터 2002년까지 15년 연속으로 15승 이상을 기록 중인 상태였다. 이전에 15년 연속으로 15승을 거둔 투수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승 투수인 사이 영이 유일했다.


 

※ 그렉 매덕스와 그의 18개의 골드글러브 (출처 : Baseballer)

이날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될 경우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최초의 4년 연속 사이 영 상* 수상자였던 매덕스가 사이 영을 넘어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아무도 밟지 못한 고지를 밟게 될 터였다.

*사이 영 상: 1891년부터 14년간 매년 20승 이상을 올리는 등 22년 동안 511승을 거둔 전설적인 투수 사이 영을 기리기 위해 1955년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포드 프릭이 리그별로 시즌 최우수투수를 선정하는 사이 영 상(賞)을 만들어 1957년부터 수여하고 있다.
 

2003년 시즌, 시즌 초반 컨디션 난조에 어려움을 겪던 그렉 매덕스.

시즌 막바지인 9월 6일이 되서야 가까스로 시즌 14승을 올린다. 그 이후에도  매덕스는 두 번의 선발 등판에서는 9월 11일 필라델피아 전 3 2/3이닝 7실점(7자책)하며 패전을, 9월 16일 몬트리올 전에서는 7이닝 4피안타 1실점으로 팀이 4-1로 앞선 상황에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고 마운드를 내려왔지만 불펜이 역전을 허용하면서 승리를 날렸다.

세 번째 15승 도전이었던 9월 21일.

이날 경기에서 매덕스는 무실점 호투를 이어가다가 3회 후안 피에르의 타구에 발목을 맞았다.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인해 또 다시 15승이 좌절 될 수 있엇던 상황. 그는 부상당한 발목을 고정시킬 수 있도록 발목 테이핑을 하고 4회와 5회 모두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치며 결국 승리투수 요건을 갖춘채 마운드를 내려온다.

 

결국, 타선과 불팬의 도움을 받으며 애틀랜타가 8-0 승리, 매덕스는 세번의 시도만에 시즌 15승을 거둔다. 사이 영의 15년 연속 15승을 넘어선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16년 연속 15승 기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애틀란타 시절 그렉 매덕스

 

전인미답의 16년 연속 15승 달성에 대해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팀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Sometimes, you're pretty fortunate on the mound. It worked out. Probably the most special thing was seeing the other 24 guys on the team really busting it for me. To see your teammates go out of the way, that's pretty special”

(가끔은 마운드에서 운이 좋아야 합니다. 잘 풀렸어요. 아마도 가장 특별한 것은 우리 팀 다른 24명의 선수들이 저를 위해 정말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본 것이겠죠. 팀 동료들이 제 몫까지 해준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에요)

매덕스는 발목에 타구를 맞은 상황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It was kind of hard to keep my weight on it. It was a little uncomfortable. With a foot you can go on. I don't know how much it swelled up, but I know it hurt”

(체중을 싣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게 조금 불편했죠. 한 발만 있으면 계속 할 수 있어요. 얼마나 부었는지는 모르지만 아팠던 건 알아요)

2004시즌에도 16승을 기록하며 17년 연속 15승의 금자탑을 쌓아 올린 매덕스는 2005시즌 13승에 그치며 대기록을 멈췄지만 2006시즌 다시 15승을 올리며 커리어 마지막 15승 시즌을 만들어냈다. 

 

매덕스는 23시즌 동안 뛰면서 무려 18차례나 15승 이상을 거뒀으며 200이닝 이상을 던진 시즌도 18차례였다. 매덕스가 주로 활약한 시기가 타자들의 금지 약물 투약이 성행하던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기록이다.


통산 744경기에서 355승 227패 평균자책점 3.16, 5008 1/3이닝, 3371탈삼진, 999볼넷 WHIP(이닝 당 출루 허용률) 1.14 등의 성적을 기록한 매덕스는 2014년 97.2%의 득표율로 첫 투표에서 바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97.2%의 득표율은 당시 기준으로 역대 8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투수로는 톰 시버(98.84%), 놀란 라이언(98.79%)에 이은 3위의 기록이었다. 하지만 매덕스에게는 97.2%라는 수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이었다.



 

※ 그렉 매덕스의 명예의 전당 헌액 장면

 

전년도인 2013년 투표에서 배리 본즈, 새미 소사 등 금지 약물 투약 혐의자들이 후보로 나오면서 이에 반발해 백지표를 던진 기자들이 많아졌고, 이 때문에 오히려 다른 후보들도 득표율에서 손해를 보는 현상이 발생했다. 매덕스도 이런 상황에 따라 득표율에서 피해를 입었다. 매덕스는 만장일치 입성이 기대될 만큼의 누적 성적과 임팩트를 고루 갖췄지만 총 16표를 얻지 못했다.  

금지약물을 투약한 타자들을 상대로 약물의 도움 없이 뛰어난 성적을 거둔 투수는 오히려 더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금지 약물의 시대에 뛴 모든 선수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기자도 있었고, 후보에 오른 첫해에는 투표를 거부하는 메이저리그의 보수적인 분위기 등 여러 요소가 그의 만장일치 입성을 좌절시켰다.

 

하지만 그가 메이저리그 전체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위대한 투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렉 매덕스의 16년 연속 15승 경기에 실제 사용된 공과 경기 티켓. 공에는 매덕스의 친필 사인과 16년 연속 15승을 의미하는 16x15라는 문구가 적혀 있으며, 티켓에도 매덕스의 친필 사인이 담겨있다. (이랜드 뮤지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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