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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너를 세상에 알리지 못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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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녀 위기가정 : 출생신고조차 못했던 아이
다자녀 위기가정 : 출생신고조차 못했던 아이
2024.12.26
2024.12.26
Editor 햇살한줌
[마음 온(溫)에어]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로 마주하는 우리 주변의 진실, 따뜻한 마음이 모여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예승아... 아빠가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이 대사처럼, 여덟 아이의 엄마 김선숙(가명) 씨에게도 자녀들은 그녀가 붙잡은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두려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은 어떻게 버티지' 하는 생각뿐이었어요."
중학생부터 갓 태어난 신생아까지 여섯 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는 김 씨의 하루는 늘 생존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정부보조금 125만 원이 유일한 수입이었지만, 사실혼 관계로 인해 그 마저도 끊기고 말았습니다.
흔들리는 삶의 기반
"아이들 짐을 현관에도 못 들어오게 했어요. 추운 겨울에도 아이들 옷가지를 계단에 두어야했죠."
김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이들은 매일 밤 옷을 껴입은 채 잠들어야 했습니다.
아이들의 짐이 방치되어 있는 모습
한국한부모가족협회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한부모 가정의 43.2%가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특히 다자녀 한부모 가정의 경우, 양육비와 생활비 부담이 더욱 가중되어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기 쉽습니다.
끝나지 않는 폭력의 그림자
사실 김 씨는 다섯째 아이 이후 이혼했지만,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없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어린 아이들을 둔 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어요."
결국 다시 전 배우자와 한집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지속되는 폭력과 강제 출산으로 여섯째부터 여덟째 아이까지 태어났습니다.
"아이들이 아빠 발소리만 들어도 떨었어요. 큰애들은 그래도 친척집으로라도 피했지만, 어린 애들은..."
김 씨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점점 더 움츠러들었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막내는 태어나고 출생신고도 못했어요. 병원비가 밀려서..."
여덟째로 태어난 막내 승우(가명)는 태어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72시간의 기적
김 씨는 전세임대대출에 선정되었지만, 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어 새로운 시작은 여전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복지기관을 통해 김 씨의 사연이 이랜드복지재단의 'SOS 위고'에 전달됐습니다.
신청 후 72시간. 기적 같은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보증금 280만 원과 이전비 지원이 결정된 것입니다. 여기에 체납된 산부인과 비용 54만 원도 지원받게 되면서 여덟째 승우의 출생신고도 가능해졌습니다.
"여덟째가 태어나고 두 달이 지나도록 출생신고를 못했어요. 이제야 우리 승우가 공식적으로 제 자녀가 될 수 있게 됐네요."
김 씨의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묻어났습니다.
파자마를 입고 편히 잠들 수 있는 아이들
"아이들이 처음으로 '우리 집'이라고 말하더라고요."
김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더 이상 짐을 계단에 둘 필요도, 쫓겨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처음으로 아이들은 자신만의 옷장에 옷을 걸 수 있게 됐습니다.
"어젯밤에는 막내가 파자마를 입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전에는 늘 옷을 입은 채로 잤는데..."
이제야 아이들에게 평범한 일상을 선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셋째인 준호(가명, 15세)는 "이제는 친구들이랑 같이 학교에 갈 수 있어서 좋아요"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이전에는 아버지를 피해 매일 다른 시간에 등교해야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새로운 내일을 꿈꾸며
현재 김 씨는 심리 상담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 이야기를 하며 도움을 구할 수 있어요. 그게 얼마나 큰 변화인지 몰라요."
복지기관과 교육청은 통합 사례 지원을 논의 중이며, 한부모가정수급 대상 재검토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한 가정의 존엄을 지키는 보금자리. 김 씨 가정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희망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어요."
김 씨의 말에서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이 느껴졌습니다.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는 일상, 평범하지만 기적 같은 날들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도 어딘가에는 자신의 아이를 세상에 알리지 못한 채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김선숙 씨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기를,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