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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할머니의
작지만 누구보다 큰 선물
쪽방촌 할머니의
작지만 누구보다 큰 선물
컵라면 일곱개,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기부
컵라면 일곱개,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기부
2024.12.21
2024.12.21
Editor 햇살한줌
[마음 온(溫)에어]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로 마주하는 우리 주변의 진실, 따뜻한 마음이 모여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나누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
영화 《국제시장》의 이 대사처럼, 서울 종로 쪽방촌의 김순자(가명·78) 할머니는 자신의 작은 나눔으로 더 큰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방에서 시작되는 하루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천장을 봐요. 어디서 물이 새는지 확인해야 하거든요."
김 할머니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두 평 남짓한 방, 곰팡이 핀 벽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이 오늘도 할머니의 얼굴을 비춥니다.
남편과 사별한 후, 할머니는 허리가 굽을 때까지 작은 식당에서 일했습니다. 설거지와 청소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왔지만, 결국 몸이 견디지 못했습니다. 월세 15만 원의 이 작은 방이 15년 전부터 할머니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조리시설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컵라면이랑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일상이 됐죠. 배고픈 건 참을 수 있는데, 혼자라는 게 제일 서러웠어요."
따뜻한 밥 한 그릇이 가져온 변화
올해 7월, 이랜드복지재단이 운영하는 무료급식소가 문을 열면서 할머니의 일상에 작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곳에 오는 게 창피했어요. 그런데 여기 봉사자 분들이 내 손주처럼 반갑게 맞아주시는데, 어느새 마음이 따뜻해지더라고요."
매일 아침 7시, 할머니는 급식소에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따뜻한 밥과 국은 물론, 봉사자들의 안부 인사가 일상의 작은 기쁨이 되었습니다.
검은 봉지 속 특별한 선물
지난주 월요일 아침, 할머니는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급식소를 찾았습니다. 할머니의 손에 들린 봉지 안에는 할머니가 한 달 동안 모아둔 컵라면 일곱 개가 들어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이거 진짜 필요한 사람 줘요."
"내가 배고파봐서 알아요. 추운 날 뜨거운 국물이 얼마나 그리운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 줘요."
봉지를 전달 받은 이랜드복지재단 관계자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할머니께서 봉지를 내미시는데, 손이 떨리고 계시더라고요. 나누는 것도, 나눔을 청하는 것도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 모습에 가슴이 저려오더라구요."
보건복지부의 '2023 취약계층 실태조사'는 충격적인 현실을 보여줍니다. 전국 쪽방촌 거주자의 83%가 하루 한 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층의 경우, 그 비율이 91%에 달합니다.
작은 나눔이 만든 기적
할머니의 작은 선물은 무료급식소에 특별한 의미를 남겼습니다. 봉사자들은 그날의 이야기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할머니의 나눔은 금액으로 따질 수 없는, 그래서 더욱 값진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어요. 우리가 드리는 것보다 더 큰 가르침을 받았죠. 봉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며 시설장 구재영 목사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오늘도 급식소 한켠에는 할머니가 가져온 컵라면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작은 나눔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만큼은 그 어떤 기부보다 특별했습니다.
당신의 관심이 또 다른 나눔의 시작이 됩니다.
"받기만 하다가 나눌 수 있게 되니까 마음이 따뜻해져요.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지금도 어딘가에서 작지만 특별한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