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검색창 닫기
검색

매거진 상세보기

Magazine>

새해를 기다리는 희망의 날

새해를 기다리는 희망의 날

동지 : 가족과 함께 팥죽 먹는 작은 설날

동지 : 가족과 함께 팥죽 먹는 작은 설날

2024.12.18

2024.12.18


 

Editor 은은한조명
[구르망 유니버스]
 

동지(冬至)

12월 21일은 동지(冬至)입니다. '冬(동)'은 '겨울'을, '至(지)'는 '이르다, 도달하다'라는 뜻을 지닌 한자로, 동지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도달한 날'을 의미합니다. 24절기 중 하나인 이날은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북반구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이날을 기점으로 낮이 점차 길어지기에 동양에서는 '해가 부활하는 날'로 여겨왔습니다.


 

동지는 단순히 날이 짧고 어두운 날이 아닙니다. '새로운 빛을 기다리는 희망의 날'로서 어둠을 지나 빛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자, 새해를 준비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죠. 우리 조상들 역시 동지를 '작은 설'이라 부르며 새해를 준비하는 중요한 날로 여겼습니다.

조상들은 '팥의 붉은색'이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습니다. 동지가 되면 팥죽을 대문과 벽, 곳간 등에 뿌리기도 했죠. 이는 집안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풍습이었습니다. 설날 떡국처럼 '동지 팥죽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도 있었죠. 가족들은 함께 팥죽을 나눠 먹으며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준비했습니다. 팥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가족과 이웃이 함께 나누며 새해의 희망을 기원하는 특별한 음식이었던 것이죠.

중국, 일본에서도 동지를 보낼까?

한국에서는 동지하면 팥죽이 떠오르지만, 이웃 나라들도 이맘때 특별한 음식을 나누며 겨울을 이겨내는 고유한 풍습이 있습니다. 우리와 중국, 일본의 동지는 어떻게 다를까요?

한국의 팥죽

한국에서 동지는 곧 팥죽의 계절입니다. 팥죽은 단순한 겨울 음식이 아닌, 오랜 세월 동안 우리 풍습과 함께 특별한 음식으로 자리 잡았죠.


 

동짓날 팥죽을 나누어 먹는 풍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집에서 정성껏 끓인 팥죽을 가족과 함께 나누거나, 길거리에서 따끈한 한 그릇을 사 먹으며 겨울의 정취를 느끼죠.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쫄깃한 새알심입니다. 찹쌀가루로 동글동글하게 빚어 넣은 새알심은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을 더하며, 가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팥죽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겨울을 지켜온 전통 음식입니다. 예전에는 동지날이면 집집마다 큰 가마솥에 팥을 푹 끓여 가족과 이웃에게 나누어 주며 복을 기원했죠. 대문이나 장독대에 팥죽을 뿌리던 풍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지만, 오늘날에는 전통 있는 팥죽 맛집을 찾거나 간편식으로 집에서 즐기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동지의 풍습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중국의 '동지 교자(冬至饺子)'

중국에서는 동지를 '동지대여년(冬至大如年)', 즉 설날만큼 중요한 날로 여깁니다. 이날 중국인들은 특별히 '교자(饺子)', 즉 만두를 즐깁니다. 고기 육수에 만두를 넣어 우리의 만둣국과 비슷한 훈툰(馄饨)을 먹기도 하죠.

중국의 교자(좌)와 훈툰(우)

이러한 풍습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후한 시대의 명의 '장중경'은 추운 겨울, 가난한 사람들의 귀가 동상에 걸리는 것을 보고 귀를 닮은 모양의 만두를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뜨끈한 만두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추위를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이때부터 동지에는 만두를 먹으며 건강과 따뜻한 겨울을 기원하는 풍습이 이어져 왔습니다.

동지에 먹는 만두에는 돼지고기, 채소, 다양한 양념이 들어가 맛과 영양이 풍부합니다. 중국인들은 만두를 나누어 먹으며 '나쁜 운을 떨쳐버리고 좋은 일이 가득하라'는 소원을 빌기도 합니다.

일본의 '호박죽과 유자탕(冬至かぼちゃと柚子湯)'

일본에서는 동지를 '도지(冬至)'라 부르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특별한 동지 음식을 즐깁니다. 대표적인 음식으로 '이토코니(いとこ煮)'라는 향토 음식이 있는데, 이는 팥을 기본으로 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동지 음식입니다. 지역에 따라 호박, 고구마, 무, 당근, 연근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정성스럽게 만듭니다.


 

팥을 '야쿠요케(厄除け)', 즉 '힘든 일을 이겨내는 음식'으로 여기는 일본에서는 이 음식을 통해 가족과 이웃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했습니다.


 

동지날 일본인들은 특별히 유자탕에 몸을 담급니다. 유자 향이 가득한 따뜻한 목욕물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피로를 풀어줄 뿐 아니라, 피부 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유자가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녀 동지에는 꼭 유자탕을 즐기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죠. '온천의 나라' 다운 겨울나기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대표 팥죽 맛집

쌀쌀해지면 꼭 찾게 되는 서울의 전통 있는 팥죽집 두 곳을 소개합니다.

©cji****, 핑꾸로즈, 다올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  | 서울 종로구 삼청로 122-1

삼청동의 고즈넉한 골목에 자리 잡은 48년 전통의 팥죽집입니다.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면 옛날 다방 같은 정겨움과 현대적 세련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이 펼쳐집니다. 이곳의 대표 메뉴 '단팥죽'은 부드러우면서도 걸쭉한 식감이 특징이며, 한 숟가락만 떠도 팥의 진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집니다.

소금간이 적절해 달지 않으면서도 팥 본연의 은은한 단맛이 감돌고, 은은한 계피향이 더해져 깊이 있는 맛을 선사합니다. 가운데 올라간 동그란 새알심은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더하며, 팥죽의 깊은 단맛과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특히 위에 올라간 밤과 은행 등 각종 고명이 팥죽과 어우러져 든든한 한 끼를 완성합니다.


■ 단팥죽 8,000원
■ 생각대추차 6,000원
■ 쌍화차 8,000원


 


 

©Nardi, 재경팀 직원, 아이싱싱, 가뉴메데스

신당동천팥죽  | 서울 중구 다산로44길 33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정겨운 노포입니다. 깊은 정성과 고유의 풍미가 살아있는 전통 팥죽의 진수를 맛볼 수 있죠. 이곳의 팥죽은 걸쭉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며, 팥 고유의 구수하고 진한 맛이 일품입니다. 진하고 매끈한 팥죽의 색감만으로도 깊은 맛을 짐작케 합니다.

이곳 팥죽의 매력은 단맛을 절제하고 팥 본연의 맛을 살린 점입니다. 달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단맛이 느껴져 먹을수록 깊은 풍미가 더해지죠. 쫄깃한 새알심이 듬뿍 들어있어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찰진 식감이 팥죽의 부드러움과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을 선사합니다.

직접 담근 동치미와 김치 같은 담백한 곁들임 음식이 함께 나와 팥죽의 깊은 맛을 한층 돋웁니다. 복잡하지 않은 재료로 정직하게 끓여낸 팥죽이지만, 한 그릇에 담긴 따뜻함과 정성은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함을 자랑합니다.


■ 팥죽 11,000원
■ 팥 칼국수 10,000원


 


 

추운 날, 집에서도 동지를

현대의 팥죽은 더욱 간편하고 다양해졌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가마솥 대신 즉석 팥죽과 레토르트 제품이 등장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팥죽을 손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죠.

동지의 팥죽은 이제 가정간편식은 물론, 정통 팥죽집에서나 맛볼 법한 쫀득한 새알심과 팥물, 팥칼국수용 생면까지 다양한 형태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눈 내리는 날,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정성스레 팥죽을 끓이며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온 문화유산을 경험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2024년, 유난히 길었던 밤의 끝자락에서 맞이하는 '동지'는 더 밝은 내일을 예고하듯 작은 희망의 불씨를 심어줄 것입니다. 팥죽 한 그릇에 담긴 온기처럼, 올 한 해의 나쁜 기억은 모두 털어내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 따뜻하고 활기찬 순간들이 가득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