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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2도, 열네 살 소녀의 겨울은 더 추웠다
영하 2도, 열네 살 소녀의 겨울은 더 추웠다
주거빈곤 속 현주네 가족에 닿은 따뜻한 손길
주거빈곤 속 현주네 가족에 닿은 따뜻한 손길
2024.11.28
2024.11.28
Editor 햇살한줌
[마음 온(溫)에어]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로 마주하는 우리 주변의 진실, 따뜻한 마음이 모여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따뜻한 집 뿐이었는데"
영화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이 대사처럼, 열네 살 현주(가명)가 바란 것도 그저 춥지 않은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러져가는 현주네 판잣집에서 맞는 겨울은 그녀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찜통 속 여름, 냉골 같은 겨울, 그리고 곰팡이 가득한 집
현주 양의 집은 말 그대로 '집'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열악했습니다. 여름이면 숨이 막히는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퍼졌고, 겨울이면 살을 에는 추위가 피부를 파고들었습니다. 벽지는 곰팡이로 뒤덮였고, 바닥에는 물이 고였습니다.
"밤마다 들리는 쥐들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었어요."
현주 양은 고개를 떨구며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무너진 일상, 흔들리는 삶
이 허름한 공간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중국요리집의 창고를 급히 개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간암 진단을 받은 뒤, 이 마저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결국 식당은 폐업했고, 가족은 수입 없이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현주 양은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친어머니의 얼굴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고,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새어머니와의 생활은 때로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주 양은 그 속에서도 밝게 지내기 위해 애썼습니다.
"아빠가 병원에 계실 때는, 새어머니와 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새어머니는 한국말이 서툴렀지만 더 열심히 저를 챙겨주려고 노력하셨어요."
숨어있는 위험, 72시간의 골든타임
"전기가 나가면 정말 무서워요. 누전 때문에 불이 날까 봐..."
이랜드복지재단 SOS위고가 현장을 방문했을 때, 전기 안전진단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낡은 전선은 수시로 스파크를 일으켰고, 누전 위험은 시한폭탄과도 같았습니다.
"즉시 교체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72시간 내 조치하지 않으면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은 또 다른 고통이었습니다.
"밤에 화장실 가는 게 제일 무서웠어요. 겨울에는 물이 얼어서 사용할 수도 없었고..."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현실
국토교통부의 '2023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3만 명의 청소년들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의 경우, 그 비율이 일반 가정의 2배에 달합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들 중 65%가 화재나 붕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시작, 달라진 일상
SOS위고의 긴급 지원으로 300만 원이 투입되었습니다. 전기 공사에 200만 원, 화장실 개선과 창문·문 교체에 100만 원이 사용되었습니다. 곰팡이로 뒤덮인 벽과 낡은 장판이 교체되었고, 재래식 화장실은 수세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밤에도 안심하고 화장실을 갈 수 있어요. 전기 걱정도 없고..."
현주 양은 변화를 마주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새어머니 역시 서툴지만 진심 어린 한국어로 감사를 전했습니다.
"따뜻한 집에서 지내니 정말 좋아요.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현주입니다.
평소에 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방도 필요하기도 했고 공부할 책상도 필요했었는데 감사합니다.
그리고 집을 깨끗하게 잘 고쳐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문을 설치해 주셔서 감사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저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 사회에 봉사하는 성실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랜드복지재단에 감사드리고 좋은 공간을 제공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복지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4.11.8
현주 드림
희망과 이별
그러나 변화의 기쁨도 잠시, 가족은 또 다른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현주 양의 아버지는 간암이 악화되어 병원에서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새 집에서 아빠랑 같이 살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어요."
현주 양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사진을 책상 위에 두고 매일 바라봅니다.
"아빠 사진을 두면 저를 지켜보고 계시는 것 같아요."
끝나지 않은 여정
SOS위고는 단순히 주거 환경 개선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새어머니가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교육기관과 연결했고, 현주 양이 겪은 심리적 충격을 치유하기 위해 정서 안정과 심리 검사, 트라우마 치료도 지원했습니다.
현주 양의 책상 위에는 아버지의 사진과 함께 꿈을 적은 메모지가 놓여 있습니다.
"나중에 저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받은 도움을 다른 친구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어요."
이제 현주 양과 새어머니는 둘이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로를 의지하며 이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두 사람. 아버지의 빈자리는 크지만, 두 사람은 함께 그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관심이 또 다른 현주의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는 창문을 열어도 춥지 않아요. 하늘에 계신 아빠도 이제 안심하실 것 같아요."
지금도 어딘가에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현주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따뜻한 봄소식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