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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국왕
뜻밖의 국왕
영국의 정신적 지주가 된 말더듬이
영국의 정신적 지주가 된 말더듬이
2024.07.16
2024.07.16
1939년 9월 3일 오후 6시, 150만 영국인들의 대규모 대피*가 시작된 지 삼 일째, 영국 전역은 긴장감으로 가득했어요. 대피소에 모여든 사람들은 라디오 앞에 둘러앉아 숨죽이며 방송을 기다리고 있었죠.
* 1939년 9월 1일, 영국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국민들을 도시 외곽 지역으로 대피시켰다.
※ 1939년 9월 1일, 영국 대규모 대피, 런던 워털루역 (출처: BBC)
"이 중대한 시기에, 아마도 우리 역사상 가장 운명적인 순간에, 국내외 모든 국민과 모든 가정에 이 메시지를 전합니다."
- 조지 6세의 전쟁 선언 연설 中
한편, 버킹엄 궁전에서는 국왕 조지 6세가 연설장에 들어섰어요. 단정하게 군복을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죠. 마이크 앞에 앉은 그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이내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어요. 연설은 영국이 직면한 도전과 어려움을 설명하며 시작됐어요. 그리고 그는 영국의 참전을 선언하며 국민들에게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함께 싸워줄 것을 호소했죠. 그날 밤, 영국 전역에 울려 퍼진 조지 6세의 목소리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결의와 희망을 주었어요.
Chapter 1
뒤바뀐 운명
영국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을 선언한 국왕, 조지 6세. 사실 그는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어요. 윈저 왕조*의 초대 국왕, 조지 5세의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엄격한 왕실 교육을 힘들어했죠. 언어 학대에 가까웠던 조지 5세의 가혹한 훈육은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결국 그는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며 말더듬증을 얻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바로 형인 에드워드 8세의 퇴위였죠.
* 윈저 왕조: 영국의 현 왕조. 19세기 초, 빅토리아 여왕이 독일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앨버트 공과 결혼하며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가 시작되었다.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독일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이자 당시 국왕이었던 조지 5세가 윈저 왕조로 개칭한다.
※ 조지 6세(우)와 그의 형 에드워드 8세(윈저 공, 좌) (출처: PEOPLE)
조지 6세의 형, 에드워드 8세는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슨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왕위에서 물러나기로 했어요. 그의 퇴위 결정은 영국 사회와 왕실에 큰 충격을 주었죠. 1936년 12월 11일, 에드워드 8세는 공식적으로 왕위를 포기하고 윈저 공작이 되었어요. 그렇게 조지 6세는 왕위를 이어받았죠. 조지 6세는 왕위에 큰 부담을 느꼈어요. 말더듬증을 가진 자신이 국왕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었죠. 하지만 그가 물러날 곳은 없었어요. 왕을 잃은 국민들의 기대가 자신을 향했기 때문이죠.
※ 왕위에 오른 조지 6세 (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Chapter 2
귀인과의 만남
국왕이 된 조지 6세에게 말더듬증은 치명적이었어요. 1925년, 영국 제국 전시회 폐막식 연설에서 그는 한 문장조차 온전히 구사하기 어려웠죠. 연설은 계속 끊기고 지연되었어요. 국민들은 그의 말더듬증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왕으로서 그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죠. 조지 6세는 큰 압박감을 느꼈어요. 말더듬증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언어 치료 프로그램과 전문가들을 찾아다녔죠. 그러던 중, 부인 엘리자베스 왕비로부터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소개받았어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귀인과의 만남이었죠.
※ 라이오넬 로그
로그는 참전 용사들의 언어 장애를 치료하며 유명해진 언어치료사였어요. 그의 치료법은 다른 전문가들과는 달랐죠. 그는 먼저 조지 6세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조지 6세가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도록 격려했죠. 또, 발성 연습과 호흡 조절, 그리고 심리적 안정을 찾는 방법 등을 가르치고 훈련했어요. 로그의 치료로 조지 6세는 점차 연설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죠. 그리고 1939년, 그는 로그의 도움을 받아 전쟁 선언 연설을 성공적으로 선보였어요.
※ 조지 6세가 라이오넬 로그에게 선물한 감사 편지와 은박 담배 케이스 (출처: Wooley & Wallis)
Chapter 3
떠나지 않는 왕가
"아이들은 내가 떠나지 않으면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아버지가 떠나지 않으면 떠나지 않을 것이고, 왕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라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 엘리자베스 왕비
연설 이후, 독일의 폭격은 더욱 심해졌어요. 독일 공군은 런던을 포함한 영국의 주요 도시들을 지속적으로 폭격했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죠. 버킹엄 궁전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궁전이 폭격을 당하자, 영국 정부와 왕실 고문들은 국왕과 왕비에게 런던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것을 권고했어요. 하지만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왕비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라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자리를 굳건히 지켰죠.
※ 버킹엄 궁 폭격 후 인부들과 함께 서 있는 조지 6세 국왕과 엘리자베스 왕비 (출처: iwm.org)
국왕 부부는 자리를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전쟁에 나섰어요.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왕비는 군복을 입고 군부대를 점검하고, 폭격당한 지역을 방문하며 피해 상황을 직접 확인했죠. 그들의 두 자녀인 엘리자베스 2세와 마거릿 공주도 전쟁에 기여했어요. 엘리자베스 2세는 19세의 나이로 '여성 보조군'(ATS)*에 입대해 군 트럭과 구급차를 운전하고 정비하는 임무를 맡았죠. 마거릿 공주는 걸스카우트의 일원으로 '시 레인저스'**에 참여했어요. 조지 6세와 국왕의 가족들은 목숨이 위태로운 전시에도 기꺼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어요. 국민들과 함께 위험을 감수하는 왕실의 모습에 국민들은 큰 용기와 위로를 얻었죠.
* 엘리자베스 2세는 1945년, 여성 보조군(Auxiliary Territorial Service, ATS)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시작했다. 이는 영국 왕실 여성으로서 최초로 정규 군복무를 한 사례이다. 그녀는 제2소위(Second Subaltern)로 입대 후, 명예 소령(Junior Commander)으로 진급했다.
** 시 레인저스(Sea Rangers): 영국에서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해양 활동 중심의 단체로, 걸스카우트의 일종이다. 1920년에 시작되어 소녀들에게 해양 관련 기술과 리더십을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 좌측부터 공군을 점검하는 조지 6세, ATS에서 활약 중인 엘리자베스 2세 (출처: iwm.org)
※ 조지 6세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사용하던 브리프케이스 (이랜드뮤지엄 소장)
말더듬이 왕, 조지 6세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어요. 영화 '킹스 스피치'(2010)는 '레미제라블'로도 유명한 톰 후퍼가 감독을 맡았고,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등 총 4관왕을 달성했죠.
지금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는 '킹스 스피치'의 실화, 조지 6세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요.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2세, 그리고 다양한 영국 왕실의 이야기를 왕실 소장품과 함께 만나볼 수 있는 ≪QUEENS COLLECTION》 브리티시 로열 특별전이죠. 전시는 무역센터점 10층 문화홀에서 7월 13일(토)부터 8월 20일(화)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요. 이번 전시에서 영국 왕실의 이야기를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7월 22일(월), 8월 5일(월)은 현대백화점 휴점일로 전시를 운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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