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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제명된 전설의 타자
영구 제명된 전설의 타자
불법 도박으로 몰락한 역대 최고 안타를 기록한 선수, 피트 로즈
불법 도박으로 몰락한 역대 최고 안타를 기록한 선수, 피트 로즈
2024.07.11
2024.07.11
Special Editor : 동아닷컴, 송치훈 기자님
스포츠 전문 기자 경력 10년, 야구 찐팬 경력 30년, 야구에 진심인 그만의 시선으로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메이저리그의 숨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해당 콘텐츠는 Eland Museum의 특별한 소장품으로 MLB Park와 함께 제작하는 기획 콘텐츠 입니다.
1978년 5월 5일 ‘리버프런트 스타디움(Riverfront Stadium)’에서는 몬트리올 엑스포스와 신시내티 레즈의 경기가 열렸다.
이날 1-3으로 뒤진 홈 팀 신시내티의 등번호 14번 선수는 5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 좌익수 앞으로 떨어지는 안타를 쳐냈다. 팀이 지고 있는 상황이고 타점을 올린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껑충껑충 뛰며 기뻐했다.
그리고 전광판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졌다.
‘PETE ROSE, NEWEST MEMBER OF BASEBALL'S 3000 HIT CLUB’
(피트 로즈, 3000안타 클럽의 새로운 멤버)
이 안타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13번째로 3000안타 고지를 밟은 이 선수의 이름은 피트 로즈.
1963년 4월 13일 피츠버그전에서 밥 프렌드를 상대로 3루타를 기록하면서 통산 첫 안타를 신고한 로즈는 1963시즌 170개의 안타를 때려내면서 타율 0.273, 6홈런, 13도루, 41타점 등의 성적으로 신인왕에 올랐다.
이후 로즈의 안타 행진은 식을 줄을 몰랐다. 1965시즌 처음 209안타를 기록한 이후 10번이나 200안타 이상을 기록했고, 15번이나 3할 이상의 타율을 올렸다. 또 24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17회 올스타전에 나설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 플레이를 했다. 뉴욕 양키스와의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볼넷을 얻은 뒤 전력질주로 1루로 향하는 로즈의 모습을 본 상대 투수 화이티 포드는 그에게 찰리 허슬(Charlie Hustle)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이런 승부욕이 때로는 도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장면은 1970시즌 올스타전에서 아메리칸리그(AL)팀 포수 레이 포세와 홈에서 충돌한 장면이었다. 이 충돌로 포세는 오른쪽 어깨에 큰 부상을 입었고, 선수 생활 내내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30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해야 했다. 이벤트 경기에서 과한 승부욕을 보였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선수로서 자기관리 능력과 꾸준함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로즈는 3,000안타를 기록한 이날 경기 이후 약 6년이 지난 1984년 4월 13일 필라델피아의 제리 쿠스먼을 상대로 통산 4000안타를 뽑아내면서 타이 콥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4,000안타 고지를 밟았다. 데뷔 첫 안타부터 4,000안타를 기록할 때까지 정확히 21년이 걸렸는데, 그 기간 동안 로즈의 연평균 안타 수는 무려 182개였다.
1986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을 때 로즈는 35,62경기에서 무려 4,256안타를 뽑아냈다.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로즈보다 더 많은 경기와 타석에 나선 선수도, 더 많은 안타를 때려낸 선수도 없다.
로즈는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내셔널리그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음에도 통산 타율 0.303, 출루율 0.375, 장타율 0.409, 160홈런, 1,314타점, 198도루, wRC+ 121, bWAR 79.6, fWAR 80.1 등의 성적을 올렸다.
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누적 기록을 가진 선수 중 한 명이었고, 월드 시리즈 3회 우승, 3번의 타격왕, MVP 1회, 골드글러브 2회, 신인왕, 올스타 출전 17회 등 화려한 이력을 쌓아온 로즈였기에, 1992년 첫 투표부터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은 떼놓은 당상으로 여겨졌다. 득표율이 얼마나 나올지가 유일한 관심사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안타를 때리고도 로즈는 명예의 전당 입성은 커녕 영구 제명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로즈의 추락은 1989년 스포츠 불법 도박 베팅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1989년 2월 당시 커미셔너 피터 위버로스가 로즈의 베팅 의혹을 제기했고, 로즈는 당연히 이를 부인했지만 후임 커미셔너였던 바트 지어마티가 로즈의 베팅을 적발했다.
‘Sports Illustrated’에서 로즈의 불법 베팅 의혹을 지속적으로 다뤘고, 결국 그가 1987년 신시내티 레즈의 52게임에 경기당 수천 달러에 달하는 불법 베팅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1989년 8월 24일, 그는 미국 야구계에서 영구 제명됐다.
완벽한 증거가 나오자 그는 즉시 감독직에서 사임했고, 도박 중독 치료까지 받았다. 이후 1991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도 로즈는 영구 제명 명단에 올랐고, 이 명단에서 삭제돼 복권되지 않는 이상 현재까지도 그가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자신이 맡은 팀을 불법 스포츠 도박에 베팅했다는 사실 때문에 로즈는 더욱 큰 비난을 받았다.
이후로도 그의 이미지 추락은 멈추지 않았다. 1990년에는 탈세 혐의로 5만 달러의 벌금을 냈고, 2004년 자서전 ‘창살 없는 감옥’에서 자신이 승부조작을 했음을 공식적으로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내 팀이 진다고 도박은 안 했다. 내 팀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2014년 2월 10일에는 “금지약물이 도박보다 나쁘다”고 말했다가 정작 자신의 아들이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돼 조롱을 피하지 못했고, 2015년 6월에는 ESPN에서 로즈가 선수 시절에도 도박을 했다는 증거자료를 제시하면서 회복 불능 상태로 이미지가 추락했다.
2017년 7월 31일에는 선수 시절 있었던 미성년자와의 성추문이 터졌으며, 2017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한 휴스턴이 사인 훔치기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자신은 내 팀이 이기는 쪽에 돈을 걸었을 뿐 사인 훔치기는 안 했다며 터무니없는 논리로 복권을 요구하기도 했다.
2022년 찰리 블랙몬이 스포츠도박 업체와 계약하자 자신은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며 복권 기회를 달라고 주장했고, 2024년 3월 오타니 쇼헤이의 통역사 미즈하라 잇페이의 거액 불법도박 송금 논란이 터지자 또 억지 논리를 내세워 복권을 요구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의 주장은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
역대 최다 안타 타자라는 수식어가 입증하듯이 선수로서의 능력이 출중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베팅 파문 이후에도 신시내티에서 그의 등번호 14번은 비공식 영구결번 상태였으며, 2016년에는 결국 공식적으로 영구결번이 됐다.
다만 신시내티 구단은 2003년 그레이트 아메리칸 파크 개장 경기 때 성대하게 새 구장 개장행사를 펼쳤지만, 로즈에게는 초청장을 보내지 않는 등 레전드로서의 예우를 다하지는 않았다.
역사상 가장 많은 안타를 친, 전설로 남았어야 할 선수의 이토록 초라한 말로는 선수의 사생활 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로즈의 친필사인과 기록 달성 날짜(5-5-78, 1978년 5월 5일)가 적혀있다.(이랜드 뮤지엄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