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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최고의 1번 타자
MLB 최고의 1번 타자
절대 깨질 수 없는 기록, 도루 1위, 득점 1위를 가진 리키 핸더슨
절대 깨질 수 없는 기록, 도루 1위, 득점 1위를 가진 리키 핸더슨
2024.06.26
2024.06.26
Special Editor : 동아닷컴, 송치훈 기자님
스포츠 전문 기자 경력 10년, 야구 찐팬 경력 30년, 야구에 진심인 그만의 시선으로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메이저리그의 숨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해당 콘텐츠는 Eland Museum의 특별한 소장품으로 MLB Park와 함께 제작하는 기획 콘텐츠 입니다.
2001년 10월 4일. 로스 엔젤레스(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경기가 열린 퀄컴스타디움(Qualcomm Stadium).
양 팀이 1-1 동점으로 맞선 3회말, 홈 팀 샌디에이고의 타자가 좌월 솔로 홈런을 터뜨리자 홈 팀 덕아웃에서는 모든 선수가 홈플레이트 쪽으로 뛰쳐나왔다. 홈런을 친 이 선수는 1루, 2루, 3루 베이스를 차례로 돌아 홈플레이트로 향했다.
홈런이기 때문에 서서 홈플레이트를 통과해도 됐지만, 그는 사전에 약속한대로 벤트 레그 슬라이딩으로 홈플레이트를 쓸었다. 동료들은 그를 끌어안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축하했고, 그가 황금빛 홈플레이트를 들어 올리자 2만 1606명의 관중들이 모두 그에게 환호를 보냈다.
이 홈런으로 그는 메이저리그 경기에서만 2246번째로 홈플레이트를 통과하게 됐다. 기존 메이저리그 최다 득점 보유자였던 타이 콥을 넘어 역사에 새 페이지를 쓴 그의 이름은 리키 헨더슨(Ricky Henderson).
헨더슨은 긴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1번 타자’의 역할을 가장 잘 수행했던 선수로 꼽힌다. 영화 ‘머니볼’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전 오클랜드 단장 빌리 빈은 헨더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He's the greatest leadoff hitter of all time. I'm not sure there's a close second”
(그는 역대 최고의 리드오프다. 비슷한 수준의 2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메이저리그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2301페이지 분량의 야구 백과사전 ‘토탈 베이스볼’은 역대 랭킹에서 헨더슨을 스탠 뮤지얼, 루 게릭보다 더 높은 순위에 올리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Henderson is the best leadoff in history’ is like saying ‘The sky is blue’ or ‘The fire is hot’.”
(헨더슨이 역사상 최고의 리드오프’라는 말은 ‘하늘은 파랗다’나 ‘불은 뜨겁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이러한 극찬들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헨더슨은 통산 2295득점으로 이 부문 역대 1위, 도루 역시 1406개로 역대 1위*다. 또 출루율 0.401로 1번 타자 중 유일하게 통산 출루율 4할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밖에도 통산 안타 3055개, 타율 0.279, 장타율 0.419, OPS .820, wRC+132 등의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도루 2등의 기록은 루 브록의 938개로 리키 핸더슨의 기록과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다. 역대 10위 이내 현역 선수가 없기도 해 향후 절대 깨지지 않을 기록으로 불리기도 한다.
1979시즌 데뷔해 2003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25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도루왕 타이틀을 12회나 차지한 그는 1982시즌에 단일시즌 역대 2위 기록인 130도루를 기록하는 등 한 시즌에 100도루를 넘긴 시즌이 3번이나 된다.
데뷔 2년 차이던 1980시즌 첫 도루왕 타이틀을 거머쥔 이후 7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고, 20년 차인 1998시즌에는 만 39세의 나이로 마지막 도루왕을 차지했다. 이는 역대 최고령 도루왕 기록이다. 자연히 그에게는 ‘도루의 사나이(Man of Steal)’라는 별명이 붙게 됐다..
상대 투수 입장에서는 이런 유형의 타자를 상대할 때 똑같이 출루를 허용하더라도 초구에 안타를 맞는 편이 볼넷 허용보다는 투구 수라도 아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볼넷을 주지 않기 위해 스트라이크를 던져 타자가 타격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상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볼넷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쓴 투수들을 비웃듯이 헨더슨은 역대 2위인 2190개의 볼넷을 얻어냈다. 역대 볼넷 1위인 배리 본즈는 장타에 대한 부담 때문에 고의사구가 많았고, 고의사구를 제외한 볼넷 1위는 헨더슨이다.
1번 타자로서의 가장 큰 덕목인 출루와 도루 능력도 출중했지만 통산 297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도 있었다. 20홈런 시즌이 4차례나 되며 통산 리드오프 홈런 개수에서도 81개로 메이저리그 역대 1위다.
심지어 세이버매트릭스 이전 시기엔 UBR(Ultimate Base Running,도루를 제외한 타격 후 주루 능력)과 wGDP(Weighted Grounded Into Double Play Runs,더블플레이 회피 능력)을 BsR(Base Running,주루플레이)에 합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에 남은 그의 경이로운 주루 능력조차 실제보다 저평가됐다는 의견도 있다. 역사상 최고의 리드오프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다.
그는 선천적으로는 왼손잡이였지만 야구를 시작할 무렵 또래 아이들 모두 오른손으로 타격하는 것을 보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 노력 끝에 우타자가 됐다고 한다. 야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만일 헨더슨이 좌타자*로 성장했다면 그의 기록은 더 좋았을지 모른다.
* 타석의 우측의 서는 좌타자는 우타자보다 1루와의 거리가 더 짧다. 보통 홈에서 1루까지 4초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기에 단 한 걸음의 차이로 프로 레벨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헨더슨이 남긴 이 말은 지금도 많은 1번 타자들과 허슬플레이를 주로 하는 선수들에게 교본처럼 회자되고 있다.
“If my uniform doesn't get dirty, I haven't done anything in the baseball game”
(만일 내 유니폼이 더러워지지 않았다면, 난 그 경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예요.)
이토록 뛰어난 성적의 선수였지만 의외로 헨더슨은 ‘저니맨’ 신세를 면치 못했다. 프로 5년차였던 1984년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 돼 4시즌을 뛰다가 1989년 토니 라루사 감독의 요청으로 친정팀 오클랜드로 재트레이드된 그는 오클랜드가 갑자기 재정난을 겪으면서 다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됐다.
1995년 FA 자격을 얻어 세 번째로 오클랜드에 재입단했지만 오클랜드는 37세 노장 헨더슨과 장기계약을 맺을 뜻이 없었다. 그때부터 헨더슨은 매년 다른 팀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면서 만 44세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다가 2003년 LA 다저스를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세이버매트릭스의 창시자인 빌 제임스가 “리키 헨더슨을 둘로 나눠도 두 사람 모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것”이라며 극찬했을 정도로 그의 명예의 전당 입성은 당연한 것이었다.
은퇴 이후에도 야구에 대한 끝없는 열정으로 2006년까지 독립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했기에 명예의 전당 입성 당시 ‘은퇴 후 5년’이라는 자격 조건에 맞는지에 대한 논란이 나오기도 했지만 예상대로 헨더슨은 2009년 첫 투표에서 94.8%의 높은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또 먼저 24번을 달고 있던 선수에게 2만 5000달러(현재 한화 약 3500만원)를 주고 번호를 받았을 만큼 애착을 가졌던 그의 등번호 24번은 오클랜드 구단의 영구결번이 됐다.
헨더슨의 친필사인과 기록 달성 날짜(10-4-2001)가 적혀있다. (이랜드 뮤지엄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