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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3년, 현실판 아이언맨
무려 13년, 현실판 아이언맨
역대 최다 연속 경기 출전, 13년간 2632 연속 출전한 '칼 립켄 주니어'
역대 최다 연속 경기 출전, 13년간 2632 연속 출전한 '칼 립켄 주니어'
2024.05.10
2024.05.10
Special Editor : 동아닷컴, 송치훈 기자님
스포츠 전문 기자 경력 10년, 야구 찐팬 경력 30년, 야구에 진심인 그만의 시선으로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메이저리그의 숨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해당 콘텐츠는 Eland Museum의 특별한 소장품으로 MLB Park와 함께 제작하는 기획 콘텐츠 입니다.
1995년 9월 5일, 4만 6804명의 관중이 가득 들어찬 ‘캠든 야즈(Oriole Park at Camden Yards)’에서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현 LA에인절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경기가 열렸다.
이날 경기의 모든 관심은 홈 팀 볼티모어의 3번 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 출전한 ‘칼 립켄 주니어’ 단 한 선수에게 집중됐다. 그는 1982년 5월 30일 이후 1995년 9월 5일에 열린 이날 경기까지 13년이 넘는 시간동안 단 한 경기도 결장하지 않았다.
기존에 루 게릭이 가지고 있던 최다 연속 경기 출전 기록(2130경기)은 조 디마지오의 56경기 연속 안타와 더불어 누구도 깰 수 없는 기록처럼 여겨져 왔지만, 이날 칼 립켄 주니어가 56년 만에 루 게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5회초가 끝난 뒤 캠든 야즈 우측 담장 너머 ‘B&O 웨어하우스’에서는 ‘2129’라고 적힌 현수막을 ‘2130’으로 바꿔 내걸었고, 관중들은 4분 동안 칼 립켄 주니어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칼 립켄 주니어는 덕아웃에서 나와 관중들의 성원에 손을 들어 화답했다.
볼티모어 타선은 이날 17개의 안타를 때려내며 8-0 완승을 거뒀다. 17개 안타 중 6개는 홈런이었는데 이는 기존 팀 한 경기 최다 홈런 기록과 타이 기록이었다. 칼 립켄 주니어도 홈런 1개 포함 5타수 3안타로 맹활약하며 자신의 대기록을 자축했다. 이날 경기 마지막 아웃카운트 역시 칼 립켄 주니어가 유격수 앞 땅볼로 잡아냈다.
칼 립켄 주니어는 대기록 달성을 앞두고 받았던 압박감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았다.
“It's great, nothing better, but I'm mentally exhausted. There's a sense of me that wants to get back to normal baseball. I'm looking forward to it, and I'm looking forward to the end of it. Coming to the ballpark, it seems like an eternity until the game began.”
(더할 나위 없이 대단한 일이지만 저는 정신적으로 지쳤어요. 다시 평범한 야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기록과 기록의 끝이 기대되네요. 경기장에 와서 경기가 시작되기까지가 마치 영원 같아요.)
곧바로 이어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의 9월 6일 경기에 출전하면서 칼 립켄 주니어는 마침내 루 게릭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5회가 끝난 뒤 심판진과 상대 팀 선수들을 포함해 모든 관중들이 22분 동안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으며, 당시 중계를 맡은 방송사는 광고 없이 이 장면을 계속해서 생중계했다. 이 순간은 2010년에 치러진 팬 투표에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뽑혔다.
칼 립켄 주니어는 이날 이후로 1998년 9월 20일까지 연속 출장 기록을 이어가면서 2632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1994시즌 파업으로 중단된 경기들을 모두 소화했다면 그의 연속 출장 기록은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자연스레 그에게는 ‘철인(鐵人, Iron Ma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올해의 스포츠맨'으로 선발된 칼 립캔 주니어
약 16년 6개월에 걸친 그의 대기록은 수비 부담이 높은 유격수 포지션에서 주로 뛰면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빛난다. 칼 립켄 주니어는 2632경기 중 84%인 2216경기를 유격수 포지션에서 뛰었고, 2632경기 동안 팀이 소화한 이닝의 무려 99.2%를 뛰었다. 1982년 6월 15일부터 1987년 9월 4일까지는 904경기 8243이닝 연속 출장하기도 했다.
기존 기록 보유자였던 루 게릭이 수비 부담이 비교적 적은 1루수였으며 1회 한 타석만 소화한 뒤 교체하는 방법 등으로 기록을 이어나가기도 했던 반면, 칼 립켄 주니어가 7회 이전에 경기에서 빠진 건 단 4번뿐이었고 그중 2번은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퇴장당한 것이었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5시즌 2루에서 슬라이딩을 하다 발목을 다쳤지만 다행히도 다음날이 경기가 없는 날이었고, 1993시즌에는 집단 난투극 도중 무릎 부상을 입었음에도 붕대를 감고 끝까지 경기를 소화했다. 1996시즌 올스타전을 앞두고는 사진을 찍다가 코뼈에 금이 가는 사고가 있었지만 올스타전은 물론 이후 모든 경기를 소화했다.
가장 큰 위기는 1996년 그의 아내가 둘째 출산을 앞뒀을 때였다. 칼 립켄 주니어는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기 위해 자신의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둘째 아들이 경기가 없는 날 태어나면서 기록을 더 이어갈 수 있었다. 그가 2632경기 연속 출장하는 동안 부상자명단에 올랐던 선수는 총 3695명이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그의 대기록은 1998년 9월 20일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결국 마침표를 찍었다. 시즌 종료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부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칼 립켄 주니어는 자신이 기록을 이어나가는 것이 더 이상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대기록을 마감했다.
1981시즌부터 2001시즌까지 21시즌을 활약하고 은퇴한 칼 립켄 주니어의 통산 성적은 3001경기, 타율 0.276, 3184안타, 431홈런, 1695타점 등을 기록했다. 1983시즌 처음 올스타로 선정된 이후 은퇴 시즌까지 19년 연속 올스타로 선정됐고, 올스타전 MVP 4회, 골드 글러브 2회, 아메리칸리그 MVP 2회 수상 등을 기록했다.
그의 등번호 8번은 볼티모어 구단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고, 2007년 후보자 입성 첫 해에 곧바로 98.5%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이어간다는 것은 부상 없이 경기에 뛸 수 있는 컨디션을 계속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실력도 계속 유지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칼 립켄 주니어의 기록은 어쩌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록일지 모른다.
칼 립켄 주니어의 친필사인과 9-5-95(1995년 9월 5일)라는 숫자가 적혀있다.(이랜드 뮤지엄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