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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패왕(霸王)의 명예회복

NBA 패왕(霸王)의 명예회복

카림 압둘-자바의 75-76시즌 MVP 이야기

카림 압둘-자바의 75-76시즌 MVP 이야기

2024.02.23

2024.02.23


 

'위대한 농구선수 75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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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Editor : MANIA, 허슬플레이어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을 쏟아부은 사람을 '장인'이라고 부릅니다. NBA 팬으로 살아온 20년. 숙련된 장인의 눈으로 NBA 역사에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해당 콘텐츠는 
Eland Museum의 특별한 소장품으로 MANIA와 함께 제작하는 기획 콘텐츠 입니다.

NBA에서 한 시즌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시즌 MVP는 선수에게 있어 최고로 영예로운 상이다. “스카이 훅슛”으로 유명한 전설의 센터 카림 압둘-자바(Kareem Abdul-Jabbar)는 이 상을 무려 6번이나 수상했는데, 이는 역대 최고의 선수로 G.O.A.T(Greatest Of All Time)라고 일컬어지는 마이클 조던(5회)이나, 통산 11차례 우승을 차지한 빌 러셀(5회)도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다.

UCLA 대학을 3년 연속 NCAA 토너먼트 우승으로 이끈 카림은 대학뿐만 아니라 프로 무대에서도 지배력을 과시했다. 196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픽으로 밀워키 벅스에 지명된 그는, 전년도 27승 55패에 그친 약팀 밀워키를 56승 26패의 강팀으로 단숨에 탈바꿈시켰다. 게다가 이듬해인 70-71시즌에는 창단한 지 겨우 3년밖에 안 된 밀워키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본인은 데뷔 2년 차에 시즌 MVP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 카림의 주 무기 스카이 훅슛 (출처: MS Highlights 유튜브)

※ 그의 NBA 통산 득점 2위 등극을 도운 강력한 공격 기술이었다.

1970년대는 NBA 역사에서 가장 우승 경쟁이 치열했던 춘추전국시대로 불린다. 앞서 60년대만 해도 보스턴 셀틱스가 10년 동안 9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등 절대적인 강팀 하나가 시대를 지배하던 형국이었으나, 70년대 들어서는 매년 우승팀이 바뀌는 혼전이 이어졌다.

반면에 70년대 최고의 ‘선수’를 가리는 경쟁은 비교적 싱거웠다. 71년에 첫 시즌 MVP를 차지한 카림은, 이후 70년대에만 4번의 MVP를 더 보태며 10년 동안 5번의 MVP(71년, 72년, 74년, 76년, 77년)를 차지했다. (심지어 그의 6번째 MVP 또한, 70년대 끝자락에 살짝 걸친 79-80시즌에 달성했다.) 그는 혼돈의 70년대에 선수로서 개인 위상만큼은 독보적인 ‘패왕(霸王)’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의 MVP 여정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특히 75-76시즌 MVP는, 총 6번의 MVP 중에 그가 가장 간발의 차이로 따낸 성과였다. 또한 70년대 중반에 뜻밖의 시련을 겪었던 그에게는 명예회복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카림은 밀워키를 71년에는 우승으로, 74년에는 준우승으로 이끌며 명실상부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군림했다. 하지만 74년을 끝으로 팀의 정신적 지주 오스카 로버트슨이 은퇴하고 나자, 지난 6년간 묵묵히 밀워키를 이끌었던 카림의 심경에도 동요가 일어났다.




※ 카림과 오스카 (좌: 1971년 우승 당시) (우: 2021년 밀워키 우승 경기)

그는 밀워키란 도시와 그 팬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대도시 뉴욕에서 태어나 또 다른 대도시 L.A에서 대학을 다닌 그에게, 한적한 변두리인데다가 겨울이 혹독하게 추운 밀워키의 생활환경은 그리 흡족하지만은 않았다. 요즘 NBA 스타들은 적당한 시기에 FA가 되어 본인이 원하는 팀을 선택할 권리를 비교적 편하게 누리고 있지만, 70년대만 해도 FA 제도가 제대로 정착하기 전이라 선수가 원하는 팀으로 옮기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그나마 있는 방법이라곤 억지로 트레이드 요구를 하는 식밖에 없었다. 결국 75-76시즌을 앞두고 카림은 자신을 뉴욕 또는 L.A 소재의 대도시 팀으로 보내주도록 팀에 비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맞은 프리-시즌 경기에서 카림은 상대 선수에게 눈을 찔렸는데, 대학 시절 눈 부상을 크게 당해서 트라우마가 있던 그는 순간 홧김에 백보드 기둥을 내리쳤다가 손이 부러지는 불상사를 겪었다. 치기 어린 그 행동 때문에 그는 부상으로 16경기나 결장했고, 프로답지 못하다는 내외의 혹독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또 그의 트레이드 요청이 암암리에 알려진 라커룸의 분위기도 침체에 빠지면서 전년도 준우승팀 밀워키는 38승 44패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탈락의 수모를 맛보았다.

밀워키 구단은 카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시즌 내내 설득을 거듭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시즌 말에 그의 트레이드 요청은 공식화되었다. (작은 루머 하나만 터져도 금세 대서특필되는 요즘과 달리, 70년대는 미디어가 그리 발달하지 못했기에 카림 같은 슈퍼스타의 트레이드 요청도 몇 달 동안이나 비밀에 부쳐질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리그는 발칵 뒤집혔고, 그 틈을 놓칠세라 카림의 선호 행선지 중 하나였던 L.A 레이커스가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다. 75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자 2명의 권리(2픽 데이브 마이어스 / 8픽 주니어 브릿지먼), 전년도 올-루키 퍼스트팀 유망주 브라이언 윈터스에, 블락왕 출신의 주전 센터 엘모어 스미스까지 트레이드 카드로 제시한 것이다. 결국 딜은 성사되었고, 카림은 대학 시절 영광을 보낸 도시 L.A에 다시금 입성했다.

※ 카림의 레이커스 이적 소식을 보도한 L.A Times (출처 : Justin Kubatko X)

L.A 레이커스는 72년에 우승을 차지한 전통 명문 구단이었으나, 이후 침체를 겪으며 직전 시즌에는 30승 52패의 초라한 성적에 그쳤다. 미성숙한 행동으로 인한 부상, 친정팀을 떠나려고 요구한 트레이드 등 숱한 화제와 논란을 뒤로 한 채, 카림은 레이커스의 재건을 꿈꾸며 75-76시즌을 맞이했다.

카림은 레이커스의 성적을 전년 대비 10승이나 상승시켰으나, (30승→40승) 레이커스는 같은 퍼시픽 디비전의 피닉스 선즈에 2승 차이로 뒤지며 아쉽게도 서부 플레이오프 티켓 확보에 실패했다. (당시 서부 미드웨스트 디비전의 플레이오프 진출 팀 밀워키 벅스(38승 44패)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36승 46패)의 성적은 레이커스보다 나빴으나, 당시는 디비전 1, 2위팀에게 플레이오프 진출을 자동 보장했기에 더 강한 디비전에 소속된 레이커스가 손해를 보았다.)

비록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은 무산되었지만, 카림의 개인 퍼포먼스는 여전히 훌륭했다. 그는 평균 27.7득점(리그 2위)을 올렸고, 리바운드(평균 16.9개)와 블록슛(평균 4.1개) 부문에서는 리그 1위를 차지하며 당당히 생애 네 번째 MVP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경쟁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전년도 MVP 수상자이기도 한 득점왕 밥 맥아두(평균 31.1득점, 12.4리바운드), 보스턴 셀틱스를 동부 1위(54승 28패)로 이끈 데이브 코웬스(평균 19득점, 16리바운드)도 나란히 도전장을 내밀며 MVP 한 자리를 놓고 삼파전을 벌였다.


 

※ 카림(우)과 맥아두(좌) (출처: Pinterest)

셋은 이전부터 MVP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 온 라이벌 사이였다. 특히 코웬스는 72-73시즌에 개인 활약은 카림에게 뒤졌음에도 팀 성적 프리미엄(68승 14패)으로 카림에게서 MVP를 앗아간 전적이 있었다. (당시 코웬스의 MVP 수상은 이변으로 불리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카림의 MVP 도전은 밀워키를 떠나며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동시에, 3년 전 코웬스에게 당한 복수를 할 기회이기도 했다.

카림은 개인 기록에서는 가장 빛났으나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지 못한 치명적인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 맥아두는 소속팀 버팔로 브레이브스를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으나 팀 성적은 레이커스와 큰 차이가 없었다. (46승 36패) 코웬스는 팀 성적은 가장 좋았으나 3년 전 MVP를 차지할 때만큼 압도적인 성적은 아니었다. (73년 68승 / 76년 54승)

투표 결과는 초박빙이었다. 총 185개의 1위 표 중에 카림은 가장 많은 52개를 획득했고, 맥아두는 47개, 코웬스는 48개를 각각 얻었다. 2, 3위 표까지 합친 최종 집계에서 카림은 409점으로 맥아두(393점), 코웬스(378점)를 제치고 시즌 MVP에 최종 선정되었다. 역대 MVP 투표 중 1, 2, 3위 간의 격차가 가장 적었던 승부였다.


 

※ 카림(우)과 코웬스(좌) (출처: wallpapers.com)

카림은 소속팀 레이커스가 플레이오프에 탈락했다는 불리한 여건을 감수해야 했으나, 팀 성적 자체는 몇몇 플레이오프 진출 팀보다 오히려 좋았고 무엇보다 전년 대비 팀 전력을 확실히 끌어올린 점에서 높게 평가받았다. 반면에 맥아두의 버팔로(49승→46승)와 코웬스의 보스턴(60승→54승)은 오히려 성적이 전년보다 떨어진 것이 감점으로 작용했다.

이로 인해 카림은 NBA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플레이오프 탈락 팀 출신의 시즌 MVP가 되었다. 아울러 70년대 명실상부한 ‘패왕’으로서 그 명예를 회복한 순간이기도 했다.

이후 카림은 두 차례 더 시즌 MVP를 차지했으며, 80년에는 레이커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80년대 들어 전성기가 지난 카림은 더 이상 70년대 수준의 위용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대신 매직 존슨과 함께 5번의 우승을 합작해냈다. 특히 85년 파이널에서는 38살의 나이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팀을 우승으로 견인, 역대 최고령 파이널 MVP로 뽑히기도 했다.

6번의 우승6번의 시즌 MVP, 또한 2023년에 르브론 제임스가 경신하기 전까지 역대 최다 득점(38,387점) 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카림 압둘-자바는, 한 시대를 풍미한 NBA의 대표 레전드 중 하나로 그 업적을 길이 남겼다.


 

※ 카림의 75-76시즌 MVP 트로피 (이랜드뮤지엄 소장)

※ 당시 트로피의 이름은 NBA 초대 총재의 이름을 따서 “포돌로프 트로피”로 불렸다.
※ 현재 시즌 MVP 트로피는 마이클 조던의 이름을 따서 “마이클 조던 트로피”라 불린다.
※ 2019년에 카림은 그의 우승 반지들과 3개의 시즌 MVP 트로피(72년, 74년, 76년) 등 귀중한 여러 소장품을 경매에 내놓고, 그 수익금을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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