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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무기로 역사에 다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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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의 신으로 불리우는 사나이, 토니 그윈

타격의 신으로 불리우는 사나이, 토니 그윈

2024.04.12

2024.04.12


 

Special Editor : 동아닷컴, 송치훈 기자님


스포츠 전문 기자 경력 10년, 야구 찐팬 경력 30년, 야구에 진심인 그만의 시선으로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메이저리그의 숨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해당 콘텐츠는 
Eland Museum의 특별한 소장품으로 MLB Park와 함께 제작하는 기획 콘텐츠 입니다.

1983년 9월 14일, 샌디에이고 스타디움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경기.

198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3라운드(전체 58순위)에 지명되어 입단한 2년차 외야수 토니 그윈은 이날 경기에 3번 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1회말 첫 타석에 들어선 그윈은 상대 선발 마이크 크루코우를 상대로 중전안타를 치고 나갔다. 

이 안타로 그윈은 2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면서 종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팀 최다 연속 안타 기록인 21경기를 경신했다. 그윈은 이후로도 3경기 더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가며 팀 최다 연속 안타 기록을 25경기로 늘렸다.



 

※ 타격 후 달려나가는 토니 그윈

 

1982년 7월 19일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한 그윈은 이후 2001년까지 20시즌 동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만 뛰며 총 3141안타를 기록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꾸준했던 타자 중 하나로 꼽힌다. 


데뷔 시즌 타율 0.289를 기록한 이후 15년 연속 규정 타석 타율 3할, 규정타석을 못 채운 시즌 포함 19년 연속 타율 3할 기록을 세웠다. 5시즌 연속(1993~1997)으로 0.350의 고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 5시즌 연속 0.350 이상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그윈 뿐이다. 기량이 하락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은퇴 시즌 타율도 0.324에 달한다. 


특히 1994시즌의 그윈은 ‘마지막 4할 타자’라는 테드 윌리엄스의 타이틀을 시즌 내내 위협했다.  

그윈은 1994시즌 개막전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에이스 그렉 매덕스를 상대로 첫 타석부터 안타를 기록하며 힘차게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두 번째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나며 무릎 통증을 호소, 1주일 간 쉬어야 했다. 1주일 후 돌아온 그윈은 시즌 내내 그야말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4월 23일 필라델피아 전에서 홈런과 2루타를 포함해 5타수 5안타를 쳤고, 시즌 타율도 0.426으로 올랐다.

그윈의 5안타 맹활약에 다음날 필라델피아 선발 커트 실링이 그가 사인 훔치기를 했다고 생각하고 그윈의 무릎을 향해 빈볼을 던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윈은 다음 두 타석에서 실링을 상대로 연속 안타를 쳐냈다.



※ 5타수 5안타를 기록한 토니 그윈
그의 절정의 타격감을 볼 수 있다 (
출처: MLB)

5월 14일까지도 4할대 타율을 유지하던 그윈은 5월 15일 다저스 원정에서 3타수 무안타, 다음날 시카고 컵스 원정에서 3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며 시즌 타율 0.398를 기록, 4할 타율 아래로 내려가게 됐다. 하지만 그는 이후로도 시즌 타율이 4할에서 크게 멀어지지는 않았다. 꾸준히 0.380 이상의 타율을 유지했고, 0.390대를 오가며 계속해서 4할 타율 달성 가능성을 남겨뒀다.


6월의 마지막 날 그윈은 뉴욕 메츠의 사이영상 2회 투수 브렛 세이버하겐에게 2안타를 치면서 다시 타율 0.390대에 복귀했다. 첫 두 타석 연속 안타를 쳤을 때는 일시적으로 타율 0.401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이후 타석 범타로 다시 0.391가 됐다. 

후반기에 들어 그윈의 타격감은 더욱 불타올랐다. 7월 15일부터 홈에서 열린 뉴욕 메츠와의 더블헤더 포함 4경기에서 10안타를 몰아쳤고, 7월 22일 필라델피아와의 원정 더블헤더에서 6안타를 몰아치며 타율 0.393이 됐다. 

체력이 떨어지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 후유증이 우려되던 8월에도 그윈은 무려 타율 0.475를 기록했다. 시즌 타율 0.392로 8월 원정 10연전의 종착지 휴스턴에 도착한 그윈은 3연전에서 6안타를 치며 시즌 타율을 0.394까지 끌어올렸다. 45경기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53년 만의 4할 타자 탄생에 기대감이 높아졌다. 


※ 94년 당시 그윈의 타율을 보도하던 ESPN

그러나 그윈의 안타 행진은 자의가 아닌 다른 상황들 때문에 결국 멈춰서고 말았다. 선수노조와 MLB 구단주와의 마찰이 극에 달하면서 파업*으로 이어졌고, 한 달의 진통 끝에 9월 14일, 남은 시즌 경기들이 모두 취소됐다. 그윈의 4할 도전도 이렇게 허무하게 멈춰섰다. 

*당시 FA 제도 도입으로 선수단 연봉이 급격히 높아지자, 선수들의 연봉 상승을 억제하는 샐러리캡 도입, 연봉 조정 제도 등이 논의된다. 이에 MLB 선수 노조는 구단주들의 일방적인 결정에 반대하며 파업에 돌입하게 된다.


 

※ 1994년 파업 당시 팬들의 모습
구단주와 선수 사이의 갈등에 대해 팬들만 피해보고 있다며 호소하고 있다.

 

​안타까웠던 것은 휴스턴 3연전에서 당시 샌디에이고 타격 코치인 머브 레튼먼드는 그윈이 13타석에서 9안타를 치면 4할에 복귀가능하고 그렇게 준비가 되었다며 4할 도전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휴스턴과의 시리즈에서 그윈의 성적은 13타수 6안타. 4할에 단 3안타가 부족한 채 그의 4할 도전은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그윈의 1994시즌 최종 타율은 0.394. 1941년 테드 윌리엄스 이후 최고 타율이었지만 끝까지 4할 타율에 도전하지 못한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그윈이 더욱 대단한 것은 최정상급 투수들을 상대로도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윈은 명예의전당에 오른 투수 18명과 통산 541번의 맞대결을 펼쳤다. 보통 한 시즌을 풀로 소화했을 때 들어서는 타석수와 비슷한 이 수많은 맞대결들에서 그윈의 타율은 무려 0.331였다. 통산 타율 0.338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특히 ‘컨트롤의 마술사’라는 별명과 함께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렉 매덕스는 그윈에게 크게 고전했다.  

매덕스는 2014년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그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Sometimes hitters can pick up differences in spin. They can identify pitches if there are different releases points or if a curve ball starts with an upward hump as it leaves the pitcher’s hand. But if a pitcher can change speeds, every hitter is helpless, limited by human vision. Except, for that fu**ing Tony Gwynn”.

(가끔 공의 회전을 읽어내는 타자들이 있습니다. 릴리스 포인트의 차이로 구종을 알아내는 타자들도 있고, 커브볼 특유의 손을 떠나는 순간의 떠오름을 포착하는 타자들도 있죠. 하지만 투수가 공의 속도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 어떠한 타자라도 속수무책일 겁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그걸 구분하는 데 한계가 있죠. 단 한 명, 토니 그윈 그 XX만 빼고).


 

※ 토니 그윈에게 유독 약했던 레전드 그랙 매덕스

 

토니 그윈은 1982시즌부터 2001시즌까지 20시즌 동안 통산 3141안타, 타율 .338, OPS* 0.847 135홈런, 319도루, wRC+** 132 등의 성적, 그리고 내셔널리그 타격왕 8회, 실버슬러거 7회 등의 기록을 남기고 은퇴했다.

* OPS(On-base Plus Slugging) : 출루율과 장타율의 합. 타자의 생산성을 보여주는 기본 지표이며, 0.8 이상일 경우 평균 이상의 성적을 기록한 선수로 인식된다.

8번의 내셔널리그 타격왕 기록은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호너스 와그너의 기록과 최다 타이 기록이다.(역대 통산 최다 타격왕은 타이 콥, 아메리칸리그 타격왕 12회) 특히 그윈의 통산 타율 0.338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활동한 선수들 중에서 최고 기록이며, 라이브볼 시대로 범위를 넓혀도 테드 윌리엄스, 루 게릭, 빌 테리에 이어 4번째다.


선수 생활 내내 오직 파드리스 유니폼만을 입고 뛴 그윈은 타율, 출루, 안타, 2루타, 3루타, 타점, 볼넷, 도루, 출전 경기 수 등에서 파드리스 구단 역대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의 등번호 19번은 2004년 파드리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 2024시즌 파드리스에 입단한 고우석이 기존에 LG트윈스에서 달던 등번호 19번을 그대로 달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윈은 2007년 1월 9일에 545명의 투표인단 중 532표를 얻으며 97.6%의 높은 득표율로 칼 립켄 주니어 등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또 2007년 6월 21일 파드리스는 홈구장 펫코 파크 앞에 토니 그윈 동상 제막식을 거행했다. 동상에는 ‘미스터 파드레(Mr. Padre)’라는 그윈의 애칭이 새겨져 있다.



 

※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토니 그윈

 

은퇴 이후 모교인 샌디에이고 주립 대학교 야구부 코치, ESPN과 야후 스포츠 등에서 전문 분석가, 파드리스 경기 해설자 등으로 활동하던 그윈은 2014년 6월 16일 향년 55세의 젊은 나이에 침샘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 토니 그윈이 세상을 떠난 후 암의 원인이 그가 선수 시절 즐겨 이용했던 ‘씹는 담배’임이 밝혀졌다. 이듬해인 2015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씹는 담배 이용을 전면 금지한다.

"나에게는 내가 뭔가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코치가 항상 있었다. 그들은 내가 던질 수 없고, 세게 칠 수 없고, 발도 느리니 절대 경기에 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성공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 토니 그윈 인터뷰 中



 

*토니 그윈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팀 최다 연속 안타 신기록(기존 21경기 연속)을 경신한 경기에 사용된 공.
스위트스팟에 녹색 잉크로 당시 그의 성적이 작성되어있다.
(1983년 9월 14일 샌디에이고 스타디움, 자이언츠 전, 크루코우 상대 4타수 3안타 0득점 2타점)(이랜드 뮤지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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